<신영복 선생님의 어깨동무체로 쓴 '아름다운 동행'> 출처: 오마이뉴스


보내주신 메일 감사합니다. 스스로는 부끄러워, 답신 형태가 아니라 별도의 '새창'에다 편지를 보냅니다. 우리 모두는 한 평생 학생이자 실험생입니다. 어느 대목이건 누구에게든 배우고 되돌아보고 내다볼 수 있으니까요.

 
당연히, 만족스럽지 못합니다. 매 학기가 끝날 때마다 혼자 한숨을 쉴 때도 많고, 잘 하고 있는건가 근원적인 의문에 시달리게 됩니다. '그만하면 됐다'고 자부할 수 없는 노릇입니다. 다만, 작년 강의안에서 20%는 새것, 좀 더 나은 것으로 바꾸자고 다짐하곤 합니다. 
 
저는 오히려 재준님의 청강 태도, 열의, 회사생활, 제출해준 과제내용에서 다시 제가 배우고 감화받고 격려받았습니다. 특히 진솔한 과제내용은 그 자체로 귀한 것이었습니다. 
 
이후 박사과정 도전에 큰 박수 보냅니다. 실행도 하시고 성취도 얻기를 기대합니다. 박사과정에 가나 안가나 평생 공부해야 할 것은 분명합니다. 
 
저는 어리숙한 직장인이며 동시에, 겨우 한심함을 면해보려고 노력하는 강의자에 불과합니다. 스스로 '괜찮다'는 생각이 강했다면, 강의준비에 대한 부담감은 가파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도 부족한 강의에 격려를 보내주는 분들이 있어서 힘을 내어 좀 더 가게 됩니다.
 
제가 종교를 선택해서 따르는 바가 없습니다. 하지만 종교인들이 쓰는 단어 중에 '도반(道伴)'이라는 단어를 좋아합니다. '함께 길을 걸어가는 벗'이라는 뜻일 겁니다. 이 뜻이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누가 끌고 누가 따르는 것이 아니라 함께 나란이 걸어가는 것이죠. 그런 모습을 상상해봐도 참 좋습니다.
 
저에게는 생활환경대학원 '디자인경영' 과정이 '인생의 축복같은 선물'입니다. 부족한 제가 무엇인가 듣고 읽고 배운 것을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삶에 열정 가득하고 새것을 배우려는 의지 깊은 분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인까요. 거기에 수업한다고 수당도 주시고, 저는 수업준비한다고 해야할 공부를 더 정성드려 챙기게 되는 데 그것이 다른 데로 가는 것이 아니고 저에게 쌓이는 것이니, 이기적인 관점으로 봐도 참 좋은 곳인 겁니다.^^
 
요즘에는 몇몇 회사에서도 불러 주시고,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서도 강의를 요청해옵니다. 초중고는 많은 부분 재능기부로 다니기도 합니다. 대기업도 강의료를 미리 물어본 적은 없습니다. 중학교 시절 '국어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소망이 다른 버전으로 실현되고 있으니 저로서는 기쁜 일입니다.
 
인생이 참 재미있습니다. 2005년 우연한 기회에 건축학과에 딱 한시간 '특강'을 왔습니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특강 오는 횟수가 늘어났습니다. 예를 들어 한 학기에 3시간 가량요. 2007년에는 '건축기획'이라는 과목을 신설해주셔서 연대와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생활환경대학원에서도 인연이 생겼는데, 모두 민선주 그리고 이현수 교수님의 배려 때문입니다.
 
그러니 '운이 좋다'고 할 밖에요. 재준님도 나중에 좋은 연구자 좋은 선생님이 될 것이라 확신할 수 있습니다. 그 근거를 대라면 저는 먼저 '진심'을 말하고 싶습니다. 마음 바닥까지 다 얹어서 무엇인가를 해보려는 자세입니다. 가장 잘 배우는 사람이 가장 많은 것을 배워 기꺼이 나눌 것을 예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벌써 기대가 됩니다. 
 
동시에 우리는 학위를 더 쌓건 아니건 집에서 일터에서 학교에서 이미 서로 가르치고 배우고 있는 중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영국의 한 축구감독이 스스로 '의사, 선생, 아버지를 겸하고 있다'고 표현한 적이 있는데 제가 참 좋아하는 구절입니다. 다만 '언제 의사, 선생, 아버지로 등장할 것인지를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대목도 참 좋았습니다.
 
저는 아직 그런 경지에 닿았다고 말할 수 없는 일입니다. '병원의 인턴, 교생, 초보아빠' 정도를 겸하고 있다고 해야겠습니다. 
 
앞으로도 '도반'으로 함께 배우고 공부하고 나누시죠. 이전에 '다중지능이론'에 입각하여 새로운 인사제도를 실행했던 바에서도 제가 배운 것이 많았습니다. 마음을 담아서 보내주신 편지라 짧게 답하지 못하고 저도 마음을 보태봅니다. 감사합니다.
 
이번 여름은 잠시 지난 겨울을 잊게 하고, 오는 가을의 결실을 기대하게 합니다. 장마, 폭우, 맹렬한 더위, 태풍도 예상됩니다. 성실한 농부가 하늘을 탓하지 않을 것처럼 날씨에 대해서도 달리 바랄 게 없습니다. 그런 평정한 마음으로 함께 여름을 걸어가시지요.
 
지도공(地圖工) 송규봉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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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7. 11.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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