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기획' 수강생의 편지에 대한 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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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강한 학생으로부터 이런 편지를 받는 기분이란 참 특별합니다. 영감을 불러 일으키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다니요. 이 시대 대학강의는 스마트폰보다 재미있거나 의미가 있어야 하고, 스마트폰에서 찾기 어려운 차이점을 낳지 않으면, 무료하고 괴로운 수업이 되기 쉽상입니다. 


8년째 건축기획 수업을 해오면서 한해 한해 점점 쉬워지는 것이 아니라 더 어려워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학생들에게는 놀라운 이야기로 들릴 지 모르겠지만, 사실 선생들도 학생들과 더불어 해마다 조금씩 성장해갑니다. 마치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부모로 성장하듯 말입니다. 우리는 미래를 위한 모든 것을 대비할 수가 없습니다. 뛰어들지 않으면 바다는 영원히 체험되지 않는 것처럼요. 바다의 짠맛은 책에서 읽은 염도 3%와는 비교할 수 없는 생생한 체험을 우리에게 각인시켜 줍니다.


제가 처음 '건축기획' 강의를 요청받았을 때 추천교수님의 부탁이 있었습니다. '바깥 세상과 학교 강의실을 최대한 가깝게 연결해주세요' 이 이야기를 잊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선발대(先發隊)'라는 단어를 좋아합니다. '선발대'는 '선지자'도 아니고 '선도자'도 아닙니다. '본대'가 좀 더 안전하고 편안하게 다음 여정을 갈 수 있도록 미리 가서 살펴보는 것입니다. 살펴본 것을 공유하는 사람입니다. 성실함이 조금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제가 맡은 수업은 학생들이 만날 세상에 대해 일부 살펴본 내용을 전하는 '선발대'의 보고시간이라 생각합니다.


'건축기획'은 여행가이드와 같지 않나 싶습니다. 먼저 사회를 경험했다고 해서 모두를 알거나 핵심을 파악했다고 장담키 어렵습니다. 하여 보고 듣고 경험한 것에서 미래의 여행자를 위한 가이드를 조심스럽게 내놓는 거라 생각합니다.


29살에 첫번째 사표를 쓰고 지금껏 제 인생에서는 모두 3번의 사표쓰기가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정말 '내가 살고 싶고 삶'과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고민했습니다. 한가지 다행인 것은 29살에 비해 좀 더 살고 싶고 하고 싶은 일에 가까워졌다는 점입니다.


개인적인 편지이니 저도 수업시간에 못다한 속엣말 한가지를 덧붙이고 싶습니다. 건축가가 되고 싶다고 하셨죠? 꼭 건축하세요. 어떤 직업도 '사양길'에 놓이지 않습니다. 시대에 뒤떨어지는 직업인은 그가 의사이건 IT종사자건 컴퓨터 프로그래머건 모두 시대에서 소외됩니다. 반대로 시대의 복판과 경계에서 오늘과 내일을 동시에 굽어보고 내다보는 사람은 그가 비록 농부일지라도 시대를 선도할 것입니다. 네덜란드가 세계 농업 수출국 2위로 부상한 것이나 그들이 '치유농장'을 열어 현대인의 소외와 스트레스를 농장에서 해소하는 대안으로 발전시킨 것은 농업이라는 가장 오래된 직업을 현대사회의 요구에 일치시켰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건축의 미래가 없는 것이 아니라 지난 날의 방식만 고집하는 건축인의 미래가 없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미래가 자동으로 보장된 직업이나 산업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가장 유망한 산업이나 분야를 선택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심장이 가장 또렷하고 열정적으로 지향하는 내면의 나침반을 따라 해당 분야의 선두에 서는 것이 가장 자신에 부합하는 미래개척의 방법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부족한 제 세상관찰의 중간결론입니다. 제가 옳다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저는 그런 생각을 바탕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건축기획'이 스스로를 위한 '인생기획'과 함께 하길 바랬습니다. '건축기획'이 '전문성-창의성 기획'으로 연결되길 바랬습니다. 우리 삶에서 '빅데이터'보다 어쩌면 더 중요한 것이 자신을 이해하고 분석하고 새로운 내면을 창조하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니 자기 자신에 관한 한 우리는 스스로 생물학도, 통계학도, 심리학도, 교육학도와 같은 태도를 가질 필요가 있지 않나 싶어요. 


오늘 아침 중국 알리바바그룹 창업주 마윈의 발표를 들었습니다. 그가 대학을 세번 실패하고 하버드에 열번이나 거절 받았던 사례는 흥미로웠습니다. 첫 3년 동안 매출이 한푼도 일어나지 않았던 점도, 그 와중에도 임직원들이 회사를 떠나지 않고 함께 한 것도 특별했습니다. 수익이 없던 시절을 어떻게 견뎠는지 물었더니, '고객들의 감사편지'를 읽으며 용기를 얻었다고 했습니다. 결국은 남의 길이 아닌 자신만의 길을 걸었구나~ 자신만의 길을 걸어야 새로운 생각 새로운 스토리가 만들어지는구나 싶었습니다.


또한 그는 세상이 IT에서 DT(Data Technology)로 전환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더군요. 저는 작은 GIS Data 분석 벤처의 구성원으로 일하며 이 분야의 항해를 시작한지 15년 밖에 되지 않았지만 data를 식재료 삼아 사람들이 먹고 살고 생각하고 전진하는데 '선발대'의 역할을 해보고 싶습니다. 


제 인생에 불쑥 우연히 찾아온 연대 건축과에서의 1시간 특강이 조금씩 이어져 이렇듯 8년째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대학원 그리고 기업체에서 제가 하고 있는 일을 공유할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도 합니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계획이나 준비없이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오늘 보내주신 격려편지는 어두운 밤을 걸어가야 하는 심약한 사람에게는 밤하늘의 별처럼 특별하기만 합니다. 감사합니다.


지도공(地圖工) 송규봉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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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윈 회장의 KBS 대담과 발표: https://www.youtube.com/watch?v=-AVETZwGOF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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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15. 7. 4. 0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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